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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당신이 몰랐던 <남산의 부장들> 장면 속 실제인물과 실제사건

1월 22일 개봉한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현재 200만을 돌파하며 독주하고 있습니다. 글에는 영화의 내용을 알 수 있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속 배우와 실제인물에 대한 설명은 아래의 포스팅을 통해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 관전포인트 확인하기.

 

2020/01/20 - [영화 개봉소식] - 실제인물과 비교해보는 재미, 영화 <남산의 부장들> 관전포인트

 

실제인물과 비교해보는 재미, 영화 <남산의 부장들> 관전포인트

모바일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남산의 부장들> 개봉일: 2020년 1월 22일 등급: 15세 관람가 상영시간: 114분 <남산의 부장들> 예고편 우민호 감독의 신작 <남산의 부장들>이 이틀 뒤인 2022년 1월 22일 설 연..

cinematalk.tistory.com


장면1. 링컨 기념관에서 만난 김규평(이병헌)과 박용각(곽도원)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는 김규평(이병헌)이 회고록 회수 문제로 박용각(곽도원)을 만나기 위해 직접 미국으로 갑니다. 그리고 김규평과 박용각은 워싱턴 D.C에 있는 링컨 기념관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눕니다. 링컨 기념관은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을 기념하고자 만든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에 있는 기념관 입니다.

 

워싱턴 D.C에서 만난 김규평과 박용각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이 종료된 지 10여일이 지난 1865년 4월 14일 포드 극장에서 연극을 관람하던 중 총으로 암살을 당했습니다. 이 때 암살범 존 부스는 "독재자는 죽었다. 남부는 복수했다!" 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 후 도망쳐 10여일 동안 도망을 다녔지만 그를 쫓던 기병대에 총을 맞고 사망합니다. 

 

 

윤일균, 당시 중앙정보부 해외담당차장

사실 실제인물인 김재규(극 중 김규평)와 김형욱(극 중 박용각)은 실제로는 만난적이 없습니다. 편지를 통해서 2차례 정도 귀국을 설득하였습니다. 또한 실제로 회고록을 회수한 사람은 당시에 중앙정보부 해외담당차장인 윤일균이였습니다. 

 

실제로는 만난 적이 없었지만 미국 워싱턴 D.C의 링컨 기념관에서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을 굳이 넣은 것은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했던 10.26사태와 데칼코마니 처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였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장면2. 로비스트 데보라심.

<남산의 부장들>에서 유일하게 나오는 여성 캐릭터 '로비스트 데보라 심'입니다. 우민호 감독의 <마약왕>에서는 이두삼(송강호)의 아내인 성숙경 역으로 스크린에 등장했던 배우 김소진입니다.

 

<남산의 부장들> 로비스트 데보라 심(왼쪽)

 

배우 김소진이 연기한 데보라심 또한 실제 인물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인물입니다. 실제 인물은 '수지 박 톰슨' 1971년 칼 앨버트 연방 하원의장실에서 일을 했습니다. 영화 속 데보라 심은 원래 한국인으로 나오는데, 실제로도 수지 박톰슨은 경남 통영생이며 본명은 박숙래였습니다. 

 

'데보라 심'의 실제인물 '수지 박 톰슨'

수지 박 톰슨은 외모가 예쁘고 몸매가 가냘파 미의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기도 했습니다. 나중에는 의원들과 염문설이 나기도 했다고 합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의 미 의원 초청외교 장면에서 연방의원과 함께 데보라심이 등장하는데, 실제로도 초청외교가 있었고, 이 때 한국 정부는 그녀에게 주목을 하게 됩니다.  

 

<남산의 부장들> 미 의원 초청외교 자리의 김규평(이병헌)

 

이 후에는 중앙정보부에서 수지 박 톰슨을 접대 하기도했는데, 그녀의 옆에 잘생긴 남자 배우를 앉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또한 한국 뿐 아니라 주미 한국 대사관에서도 미의원들을 만나고 싶을 때 수지박을 통했다고 합니다. 

 

장면3. 일본어로 이야기 하는 박정희 대통령(이성민)과 김규평(이병헌)

박정희 대통령(이성민)과 김규평(이병헌)이 다다미 방에 앉아 막걸리와 사이다 일명 '막사'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일본어로 과거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주고 받는 장면인데, "왜 굳이 일본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넣은 것인가?"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우민호 감독은 이 장면을 통해 김규평(실제인물 김재규)와 박정희 대통령이 오래된 사이임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 /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실제로도 박정희 대통령과 김재규는 오래된 고향 동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재규가 1946년 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에 입교하였을때 박정희도 입교하게 됩니다. 이 때 고향이 같고, 교사를 지낸 경력이 같아 친하게 지냈으며, 이후 김재규가 연대장으로 근무할 때 박정희가 사단장으로 부임해 재회 하기도 합니다. 

 

장면4. 박정희 대통령이 부르는 노래 '황성 옛터'와 인물들.

박정희 대통령이 부르던 노래는 '황성 옛터'로 일제 강점기던 1928년 발표된 이애리수의 노래 입니다. 

 

황성 옛터(이애리수)

 

황성 옛터 (이애리수)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나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 못 이뤄

구슬픈 벌레 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의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나

아 가엾다 이 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

덧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고 있노라


나는 가리라 끝이 없이 이 발길 닿는 곳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정처가 없이도

아 한없는 이 심사를 가슴속 깊이 품고

이 몸은 흘러서 가노니 옛터야 잘 있거라

 

10.26사태 때 자리에 있었던 심수봉 / 신재순

 

후반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던 여성은 실제인물인 심수봉으로 영화 <남산의 부장들> 이 전 부터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던 사실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심수봉 노래를 좋아하기에 오찬에 자주 초대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10.26 사태 이후 심수봉은 한 달 동안 정신병원에 감금 되어 있었다고 인터뷰 하기도 했습니다. 

 

또 한 박정희 옆에 앉았던 여대생으로만 알려져 있었던 여성은 신재순으로 10.26사태 당시는 이미 결혼해 딸을 둔 이혼녀였다고 합니다.

 

당시 심수봉의 기타 반주로 혼성 듀오 라나에로스포의 '사랑해'를 부르고 있었다는 것이 실제 입니다.

 

장면5. 거사 후 육군본부로 이동한 김규평(실제인물 김재규)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고 참모총장과 함께 중앙정보부로 향하던 김재규는 육군본부로 차를 돌리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김재규가 거사 후에 원래의 계획대로 중앙정보부로 갔더라면, 역사가 많이 달라졌을거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당시 암살 장소였던 궁정동 안가는 중앙정보부의 완전한 통제로 김재규 또한 사건을 덮을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박흥주(여기서 박흥주는 영화 속에서 앞좌석에 타고 있던 인물)도 육군본부로 가는 것을 찬성했는데, 육군 참모총장이였던 정승화는 육군본부로 향한 것에 찬성한 이유를 이렇게 추정 했습니다. 

 

"나중에 추측건대, 그 부관(박흥주)은 남산으로 갔다가 충성심 강한 경호실 요원들이 중앙정보부에서 대통령을 죽인 걸 알고 몰려 들어오면 고스란히 앉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군 병력이 있는 육군본부로 가는 게 안전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했을 터이고 게다가 내가 김재규와 함께 사건 현장 가까이에서 저녁 약속을 하고 함께 있었으니 모든 일을 나와 공모한 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러한 의문스러운 행보에 민주화 요구를 위해, 차지철과의 갈등으로 우발적인, 미국의 사주 등의 몇가지 가설이 있기도 합니다. 

 

장면6. 쿠키 영상, 김재규의 최후의 진술.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공판 동영상

쿠키영상에서 실제 김재규의 목소리가 공개 되었습니다. 김재규는 재판장에서 아래와 같이 이야기 하였습니다.

 

"저의 10월 26일 혁명의 목적을 말씀드리자면 다섯 가지입니다. 첫 번째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이 나라 국민들의 보다 많은 희생을 막는 것입니다. 또 세 번째는 우리 나라를 적화로부터 방지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혈맹이요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가 건국 이래 가장 나쁜 상태이므로, 이 관계를 완전히 회복해서 돈독한 관계를 가지고 국방을 위시해서 외교, 경제까지 보다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서 국익을 도모하자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로, 국제적으로 우리가 독재국가로서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을 씻고 이 나라 국민과 국가가 국제사회에서 명예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가 저의 혁명의 목적이었습니다."

 

당시 김재규는 "권력 싸움에서 밀려나 홧김에 주인을 공격한 독재정권의 권력자" 라고 평가 되었습니다. 허나 민주화 이후에 그에 대한 재평가가 점자 활발해졌으며, 이 후 박근혜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사건으로 다시 한 번 관심이 높아져 재평가 되기도 했습니다. 저마다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지만, 확실한 건 그의 행적이 단순한 권력 투쟁은 아니였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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