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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르네 젤위거가 연기한 <주디>의 '주디 갈란드'는 누굴까?

제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르네 젤위거는 수상의 영광과 기쁨을 영화 <주디>의 주인공이자 실존 인물인 주디 갈란드에게 돌렸습니다. 

 

영화 <주디>

영화 <오즈의 마법사> 속 도로시 

주디 갈란드는 1939년 할리우드의 황금기 때 제작된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 역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는 1935년 MGM이라는 회사의 오디션에 합격을 하게 되어 전속 연예인으로 활동을 하게 됩니다.

 

13살 어린나이에 아역을 하기에도, 성인역을 맡기에도 애매한 나이, 그리고 당시에 할리우드 황금기로 주연배우들은 팜므파탈 또는 핀업 걸의 스타일의 배우들이 많았기 때문에 어리고 귀여운 얼굴의 주디가 할 역할은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스튜디오의 파티에 불려 다니며 노래를 하고 작은 역할을 맡는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 때 엄마에 의해서 프로듀서들과 감독들에게 성접대를 여러 번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당시 프로듀서들은 그녀가 촬영 중에 졸려하면 암페타민을 사용해 촬영을 하도록 했고 촬영이 끝나면 수면제를 먹여 자게 했습니다. 여기에 체중 감량을 명목으로 1일 1식에 식욕 억제로 담배 네 갑(당시 기준 80개비)를 매일 주면서 흡연을 하라고 강요까지 했습니다. 

 

에바 가드너 / 라나 터너 / 엘리자베스 테일러

또한 같은 소속사에 있던 에바 가드너, 라나 터너,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같은 학교를 다녔고, 화려한 외모의 배우들 사이에서는 조금은 평범한 그녀는 항상 비교 당하고, 무시를 당해 자존감마저 바닥을 쳤습니다.

 

자의와 타의의 노력 덕분이였을까 <오즈의 마법사>가 성공하게 되고, 덕분에 MGM에서 만드는 거의 모든 뮤지컬 드라마는 주연을 꿰차게 되었습니다. 뛰어난 가창력과 연기력에 커리어적으로는 문제가 없었지만, 약물 남용과 낮은 자존감이 항상 그녀를 지배 했습니다.

 

다사다난, 순탄치 않았던 '주디 갈란드'의 결혼 생활.

첫 사랑이였던 '아티 쇼'는 '라나 터너'와 양다리를 걸치다가 결국 라나 터너와 결혼 하게 됩니다. 라나 터너는 주디 갈란드와 같은 학교를 다녔으며, <앤디 하디> 시리즈에서 미키 루니의 첫사랑 역이였습니다. 주연인 갈란드는 미키 루니를 짝사랑하는 역할이였기에 열등감이 더욱 심해지게 됩니다. 

 

이후 유부남 뮤지션인 데이빗 로스의 만나고 임신까지 하게 됩니다. 그는 '이혼하겠다'라고 했지만 결국 갈란드를 버리고 갈란드는 소속사와 그녀의 엄마에 의해 반강제로 낙태를 당하게 됩니다.

 

빈센트 미넬리, 라이자 미넬리, 주디 갈란드 / 주디 갈란드와 라이자미넬리

1945년에는 그녀가 출연한 <세인트루이스에서 만나요>라는 작품의 감독 빈센트 미넬리와 결혼하여 현재 뮤지컬 배우인 '라이자 미넬리'를 낳지만 순탄치 않았던 결혼 생활과 여러번 자살시도를 했었고, 결국 3개월가량 활동을 중단하기 까지 합니다. 결국 갖은 문제로 소속사와 헤어지게 되고 1951년 남편이였던 빈센트 미넬리가 30~40년 당대 최고의 미남으로 불렸던 타이론 파워와 정사 장면을 목격하고, 이혼하게 됩니다. 그녀의 나이 28살에 이루어진 일들이였습니다. 

 

그 후 시드니 루프트와 세번째 결혼을 하여 딸을 낳고 아들도 낳았지만 남편의 도박으로 경제가 파탄나면서 이혼을 하게 됩니다.

 

주디 갈란드와 마크헤론 / 피터 알렌과 라이자 미넬리

마크 헤론과 네번째 결혼을 하지만 자신의 사위이자 라이자 미넬리의 남편이였던 가수 피터 알렌과 바람이 나서 사랑의 도피를 벌이고 결국 엄마와 딸 각각의 남편이 서로 불륜을 벌이는 바람에 대 스캔들이 터지고 이혼하게 됩니다. 

 

'주디 갈란드' 배우, 뮤지컬 배우로서의 삶, 그리고 그녀의 죽음.

소속사와 헤어지게 된 이 후 인기 티비쇼 출연, 뮤지컬 콘서트 투어로 방향을 틀게 되고 사실상 그녀의 인생 최고 연기력을 보여준 영화라고 불리우는 <스타의 탄생> 리메이크로 다시 한 번 영화계에서 주목을 받게 됩니다. 당시 아카데미 시상식의 수상자로 점쳐졌지만 아쉽게도 그레이스 켈리에게 돌아갑니다. 그녀는 1963년 영화계에서는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됩니다. 

 

주디 갈란드 / 영화 <주디>의 르네 젤위거

이 후 게스트트로 출연한 쇼는 높은 시청률을 찍고, 카네기 홀, 브로드웨이, 베가스 등의 뮤지컬 쇼들로 높은 인기를 이어갑니다. 세계 각지에서 콘서트를 열고, 그녀의 콘서트는 항상 완매가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인기로 인해 티비에서도 그녀의 콘서트를 라이브로 방영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약물 남용과 알콜 중독은 더욱 더 심해지게 됩니다. 

 

1964년 호주에서 열린 콘서트에서는 급기야 1시간이나 딜레이 되고, 정신없는 진행을 보이기도 해, 대중들의 시선이 좋지 않아지기도 했습니다. 허나 무대에 서면 노래를 잘했기에, 콘서트 계약은 끊이질 않았습니다. 

 

미키 딘과 주디 갈란드

1969년 미키 딘과 다섯번째 결혼식을 올리지만 식을 올리고 단 몇 주 후에 약물 과다 복용으로 아파트 욕실에서 47세의 나이로 죽은 채로 발견되고 맙니다.